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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하나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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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웅용 작성일21-09-14 13:03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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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원 대천덕 신부님의 말씀을 엮은 책입니다. 설교보단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르침보단 사귐을 강조하며, 신자들은 모두 형제이고 성직자이고 일꾼이라는 평등을 말씀하십니다.

<밑줄>
한국의 신자들은 대개 설교를 듣지 않으면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설교는 예배순서 가운데 ‘교육’ 부분일 뿐입니다. 예배와 교육은 엄연히 다른 것이므로, 설교 없이도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신자들은 자기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여 선생이 가르치지 않으면 교회에 가서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설교를 들으면 그날 예배가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로 번역된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사용하셨을 때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고 (세상으로부터) 나와 이루어진 모임’이란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가르칠 교’(敎) 자를 써서 ‘교회’(敎會)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스승이 경전을 읽히고 가르쳐서 노인을 공경할 수 있는 자식으로 키우는 모임’이라는 뜻이 됩니다. 즉, 선생님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모임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교회는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 안에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온 까닭입니다. 성경적으로 번역한다면 ‘사귈 교’(交) 자를 써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주 안에서 서로 사귀는 곳이라고 하면서 사귐을 매우 강조합니다. ‘가르친다’는 말은 별로 나오지 않고 ‘사귐’ ‘교제’ ‘나눔’의 의미가 더 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귐, 교제, 나눔은 곧 ‘코이노니아’를 의미합니다.

현대 교회에서는 목자가 교사까지 되어 다스리는 사람도 되고 가르치는 사람도 되고 영적인 지도자도 되고, 제사장 노릇은 물론 예언자 노릇까지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여러가지를 한 사람이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로 각각 받은 책임대로 분수를 지켜 행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대 교회는 크게 둘로 구분지어 이쪽은 성직자 저쪽은 평신도로 나누고, 성직자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평신도는 돈만 내면 되는 식입니다. 이런 사상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분명 성경에서 나온 사상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평신도라는 말이 한번도 안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다 성직자이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일꾼입니다.

예수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누가 대(천덕) 신부님의 후임자가 될 것인가”를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예수원의 지도자는 제가 아닙니다. 저는 처음부터 그러한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예수원의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원은 성령께서 친히 의회라는 기관을 통해서 지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원의 모든 식구들도 그렇지만 저도 의회의 결정 사항에는 무조건 따릅니다. 그러므로 의회에 복종하는 사람이면 그 누구든지 저의 후임자입니다. 사람, 사람, 사람, 자꾸 사람만 보려는 것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성경 시대에는 교사가 가르치면 고맙게 생각하여 가르침을 잘 받고, 교사들이 가르치느라 바빠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하면 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경우를 보면 스스로 자기의 생활을 위해 노동하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는 장막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도 찾아온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일을 하면서도 가르칠 수 있었고 수입이 있었으므로 돈을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그의 동역자들은 돌아다니면서 가르치기만 했기 때문에 바울의 도움으로 살거나 교인들이 돈을 조금씩 주어서 생활했습니다.

성경은 나이의 차별이나 책임져야 할 주인을 따로 거론하지 않았으며, 교인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며 특별한 호칭도 없이 사귐을 가졌습니다. 한 예로 ‘데오빌로’를 부를 때 누가복음 1장 3절에서는 ‘데오빌로 각하’라고 했지만, 그가 누가복음을 읽고 깨달음이 있어서 신자가 되기로 결정한 후에는 ‘데오빌로여’(행 1:1)라며 ‘각하’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자가 된 다음에는 모두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들은 옛날부터 교만한 제도를 만들어 왔습니다. 평신도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평신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다 저렇다 하면 권세 가진 자들이 위에서 누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평신도로서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참고 영상>
https://youtu.be/CWi3Bg4tejY?t=835
예수원에 대한 영상입니다. 이 영상을 보면, 베데딕트 수도회의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bora’라는 표어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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