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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형제일까 동무일까? -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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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웅용 작성일21-07-03 23:36 조회2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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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만든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책, 공동체로 사는 이유를 읽으면서 맑스와 엥겔스의 책, 공산주의 선언이 떠올랐습니다. 두 책의 공통점은 무거운 주제와 달리 무척 가볍다는 점입니다. 작고 얇아서 그렇습니다. 둘다 함께하자는 게 주제입니다. 공동생산하여 공유하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은 매우 다릅니다. 에버하르트는 비폭력. 맑스와 엥겔스는 폭력. 누구의 말이 옳을까요?

 

우리처럼 국제 평화와 사유재산 제도의 철폐와 모든 재화의 공유를 주창하는 정치 단체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단체들의 투쟁에 더 이상 가담해서는 안 되며, 그 투쟁이 그 거대 단체들의 정신에 걸맞는 것이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 우리도 그 단체들처럼 모든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집과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 노예 노동으로 인해 정신적 발전이 위축된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이고 쏠린다. 우리도 그 단체들처럼 무산자들,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멸시당하는 사람들을 편들지만,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하여 정반대의 집단들에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계급투쟁을 멀리한다. 계급투쟁은 프롤레타리아에게 목숨을 건 사람들에 목숨을 걸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의 방어전은 물론이고 프롤레타리아의 방어전도 반대한다. 순수한 영적 싸움 속에서만 우리는 자유와 일치, 인류 평화와 사회 정의를 옹호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한다. 이로써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에버하르트 – 공동체로 사는 이유 中)

 

성직자가 언제나 봉건파(지주)와 손을 맞잡았던 것처럼 성직자 사회주의도 봉건적 사회주의와 손을 맞잡는다. 기독교적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의 색채를 가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도 없다. 기독교 역시 사적 소유에, 결혼에, 국가에 극구 반대하지 않았던가? 기독교는 그 대신에 자선과 구걸, 독신과 육욕 근절, 수도원 생활과 교회를 설교하지 않았던가. 기독교 사회주의는 성직자가 귀족의 분노에 봉헌하는 성수일 뿐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에게는 족쇄 말고는 공산주의 혁명에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맑스, 엥겔스 – 공산주의 선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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