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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안내서 - '공동체 영성의 향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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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웅용 작성일21-07-03 23:28 조회2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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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영성의 향기’는 2018년에 우리 공동체에 강의를 하러 오신 정원범 교수님이 김난예 교수님과 함께 쓴 책입니다. 브루더호프, 아미쉬, 퀘이커 공동체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공동체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함께 사는 것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공감하며 사는 것입니다. 금전적으로 일체의 사유재산을 없애는 것뿐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내 것을 우리 것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평등합니다. 상하의 위계가 있는 게 아니라 좌우의 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목사나 대표자는 공동체 식구 중에서 추첨이나 투표로 뽑히고, 가장 낮은 곳에서 공동체 식구들을 섬겨야 합니다.

 

예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주일에 한번 예배 드리면 주중에 지은 죄가 모두 용서받을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모든 삶이 예배가 되어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도록 살아야 합니다. 굳이 만나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서로 격려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작은 규모로 모여서, 특정한 몇몇의 일방적 설교가 아니라 모두가 빠짐없이 자신의 일상을 고백해야 합니다.

 

노동을 교육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공동체 모든 식구들은 매일 노동의 신성함을 몸소 느껴야 합니다. 또한 학교 교육도 그러한 노동을 교육하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먹고 살 수 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동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강요하지 말고 덮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남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성경 대로 살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살면 자식도 그렇게 되고, 세상 사람도 그렇게 됩니다. 잘못에 대해 덮어주거나 뒤에서 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그 사람 없는 곳에선 얘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적인 비판과 사적인 비난은 구분해야 합니다.




<밑줄>

자크 엘륄은 다음과 같이 종교로 변질된 기독교를 비판한다.

첫째, 엘륄은 기독교가 권력과 결탁되면서 종교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기독교는 권력계층들과 결탁하면서 복음의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고 대중화의 길을 걸어갔다. 본래 복음은 기독교의 탁월한 혁신, 은총, 사랑, 박애, 생명체에 대한 염려, 비폭력, 사소한 것에 대한 배려, 새로운 시작에의 소망과 같은 여성적인 가치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정복과 권력과 지배의 가치를 채용하면서부터, 즉 권력과 결탁하면서부터 그러한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렸다.

둘째, 엘륄은 교회가 제도가 되고, 교회의 조직이 계급제도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기독교가 종교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제국의 종교가 되기 이전 고대교회는 교인들 간에 평등한 사랑의 사귐이 있었고,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 자신의 것을 서로 나누어 살았던 사랑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교회에 교인들이 늘어나고 부자들, 권력자들이 많아지고 돈이 풍부해지면서 필요에 의해 제도가 만들어졌고, 그 제도는 제국 제도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직분의 계급화, 권력화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계급적으로 우월한 자가 계급적으로 열등한 자를 섬겨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엘륄은 주장한다.

셋째, 엘륄은 기독교가 성공주의와 결탁되면서 종교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한다.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확장에 성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고 황제의 가족과 정부의 지배계급까지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렇게 기독교는 성공했으나 그와 동시에 복음적인 삶이 왜곡되는 비극이 생겨났다. 이에 대해 엘륄은 이렇게 비판한다. “복음을 확장하려 애쓴 덕분에 기독교는 결국 성공했고 일단 한번 성공하자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계속적인 성공의 갈망을 가져왔고, 기독교인도 이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사회가 기독교에 의해 뒤집히기는커녕 오히려 기독교가 뒤집혔다”

 

참여적 영성의 뿌리는 예언자들의 사역에서 찾을 수 있다. 예언자들의 사명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었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보면, 그들의 관심은 사회변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의 메시지는 지도자들의 부정과 부패를 폭로하고 심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권력자들이 정의롭게 다스리지 못하고 불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것은 기독교 영성이 처음부터 사회 도피적이지 않고 사회 참여적이며 동시에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를 변혁하려는 참여적이며 저항적 영성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감동적인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성경 말씀, 특히 개념적 선언을 뽑아 그것을 설명하거나 설교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성경의 한 신앙 사건에 부딪혀 거기서 스스로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삶은 공동 소유와 공동 노동의 삶이다. 그들은 개인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며, 그들의 공동재산도 공동체 전체의 소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의를 위해 쓰인다. 일단 멤버가 되기로 결정하면 모든 소득과 재산을 공동체에 자유롭게 헌납한다. 그 대신 공동체는 음식과 숙소와 의료 서비스 등 모든 생활 전반을 책임진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신앙과 일상생활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과 기도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로만 기도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노동은 예배의 한 형태이다.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손자인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삶을 사랑했던 그는 지적인 대화보다는 소시지와 맥주를 나누며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주일예배는 주기도문 암송과 찬송가, 설교 등으로 이어지는 ‘예배 틀’이 없다. 노래는 많이 부르지만 일방적 전달식 설교가 없고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자신들의 신상이나 생각을 나눈다. 예배나 기도를 위한 별도의 시간 속에서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사랑’을 나눔으로써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하고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을 증거하는 것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하나님께 이끄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종교적 가르침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고 부모의 신앙을 자녀가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부모의 신앙이 정말 살아있는 것이라면 자녀에게 신앙을 전하는데 굳이 경건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부모의 신앙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학교과정을 모두 마친 아이들은 1년 동안 공동체에 남아 자신들의 진로를 고민하며 공동체의 다양한 일터에서 일을 배운다. 재봉, 요리, 전기기술, 농업, 공업, 건축 등 작은 심부름부터 시작하여 작은 책임을 지게 된다. 그 이후로는 대학 과정이나 기술학교에 들어가게 될지 공동체와 부모와 상의하여 결정하게 된다.

 

공동체 학교에서는 ‘직접’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험담이 없다. 잘못 했을 때도 공동체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상대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더라도 뒷담화하지 않고, 상대방 앞에서 직접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공동체라고 하여 무조건 용서하고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공개적으로 치리를 받고 침묵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전도를 전혀 하지 않는데도 산아제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미쉬 인구는 1890년 이래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며 10년마다 30~48%씩 늘어나고 있다.

 

아미쉬 공동체는 살아가는 일상자체가 예배이고 집과 밭이 교회이며 쟁기질하고 소치는 일이 기도이고 기독교인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읽는 유일한 성경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주일 예배는 과거에 격주로 한 번씩 교구 내 교인들의 집을 돌아가며 드리고 각 가정은 보통 1년에 1번 정도 자기 집에서 전체 예배모임을 가졌으나 지금은 조금 자유로워지고 있다. 그들이 교회 건물을 짓지 않고 교인들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께서는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한다’는 사도 행전 17장 24절을 따르는 것

 

예배는 성별과 나이에 따라 앉으며 한 명의 설교자가 2~30분간 설교를 하고 성경이 낭독되면 또 다른 목사의 설교가 약 한 시간 정도 이어진다. 목사는 사전에 준비한 원고 없이 설교를 하지만 설교 중에 눈이 촉촉하게 젖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설교가 끝난 뒤에는 설교에 대한 보완 설명과 의견 교환 등의 시간을 가지며, 다시 이어지는 기도와 성경 낭독, 찬송 순으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목사는 교구별로 교회 모임에서 추천받은 자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출한다. 아미쉬 공동체에서 목사가 되는 것을 영예로운 일로 여기지 않으며, 목회에 대한 급여 등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무겁고 힘든 책임이 뒤따르는 사역이므로 성인침례를 받을 때 언젠가 자신이 제비뽑기에 의해 목사로 뽑힐 경우 기꺼이 목사의 직분을 수행하겠다는 맹세를 해야 한다.

 

아미쉬 가정에서는 종교교육과 신학적 성찰은 거의 하지 않고, 겸손히 원칙에 따라 조용히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며 자녀들도 그렇게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학교는 주로 한 학급 학교에서 1명의 선생님이 8학년의 모든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교에는 JOY(Jesus first Others next Yourself last)라는 표어가 걸려 있는 곳이 있다 . ‘예수님 먼저, 그 다음에 다른 사람, 너 자신은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학교수업은 1시간 30분짜리 수업 4교시로 이루어지고 종교는 따로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지식의 원천으로서 이미 그들의 교과서에 녹아있고 종교의식은 학교의 일상생활에서 행해진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아미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되어 간다. 공동체 외부 세상으로 나가 아미쉬 공동체 내에서 금기시 되어있는 일들을 직접 경험해 보거나 겪어보지 못한 일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탐색의 기간 ‘럼스프린가’를 갖는다. 19~21세 정도에 럼스프린가를 마치고 돌아온 젊은이들은 아미쉬 공동체를 벗어나 외부세계로 나갈 것인지 혹은 교회의 정식 멤버가 되어 아미쉬로 살아가기 위해 침례를 받고 공동체에 남을 것인지 결정한다. 아미쉬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모두 침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예배 장소는 특정한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특별히 제작된 강단이나 화려한 꽃장식이 없으며, 대표기도도 없고, 찬송도 하지 않는다. 음악적 기구는 물론 화려한 음악도 없다. 의식적인 예배의식이나 예배를 인도하는 별도의 성직자나 목사도 없으나 2~3년마다 선출되는 대표가 행정을 받아 여러가지 일들을 알려준다.

퀘이커들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그리스도가 머리됨을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라 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곳을 교회라 하지 않고 meeting-house라 불렀고 예배를 Friends Meeting이라 하였다.

퀘이커 공동체는 하나님 앞에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고 고백하여 예배 시간에 여성들도 자유롭게 자신들의 신비적 경험을 증언하였으며 초기부터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영혼이 없는 설교가 난무하는 기성교회에 비해 특정한 예배 의식과 설교가 없는 퀘이커들의 침묵기도에는 성직자나 목사도 없고 설교도 없지만 자신의 역할에 따라 세상을 살며 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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