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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새터민 공동체마을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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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기석 작성일11-02-04 20:36 조회2,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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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모닥불사랑방 공동체소식을 자유게시판에 올리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연후에 시간을 내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새터민 공동체마을(권혁신 목사)을 생각하셨던 분들은 참고바라며, 보다 자세한 것은 \"생태적 삶을 그리워하는 인터넷신문 새마갈노(http://www.eswn.kr/)\"와 \"기독교 대안언론 당당뉴스(http://www.dangdangnews.com/)\"에 소개되었으니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입춘입니다. 따스한 새 봄을 맞는 방모임에 언제나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여주 새터민 공동체마을의 희망!
북한 선교에 힘쓰는 권혁신 목사를 찾아서

계속되는 한파에 이어 구제역도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지난 1월 13일과 14일 양일간에 걸쳐 사랑방교회 모닥불공동체방모임을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새터마을에서 가졌다.

새터민 2만명 시대... ‘北 보다 더 힘든 南’

권 목사는 1999년도 그의 아내 김지연 사모와 함께 영국의 부르더호프 공동체에서 6개월간 생활했고, 두레교회, 사랑방교회를 거쳐 2007년에는 7개월간 인도를 시작으로, 쿠웨이트,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11개국의 해외공동체 탐방에 나서기도 했다.

그가 공동체를 탐방하던 중 영국 맨체스터 은혜교회의 탈북자들을 만나고 난 이후, 실제적 공동체체험을 통한 새터민 공동체설립의지가 더욱 확고해진 듯하다.

공동체탐방 중 영국의 맨체스터 은혜교회방문 중 70여명의 교인 가운데 50여명이 북한에서 남한, 남한에서 다시 영국으로 2차 망명한 탈북자들 때문이다.

이들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어야만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권 목사는 이들이 왜 남한을 떠나 이곳으로 왔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목숨 걸고 찾아 나선 길인데 남쪽 교회에선 희망보다는 멸시와 수모를 겪으며 살았기에 차라리...”라는 답이 돌아왔단다.

자료를 보니 차가운 북에서 따스한 남쪽 땅으로 오신 분들이 벌써 2만명이 넘는다. 북한에 기근이 심해지자 제3국을 거쳐 남한 땅에 정착하신 분들은 1999년 이후 이곳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여전히 남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로 고통 받고 있었다.

전체 새터민 중 70%가 이혼 및 가족해체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남한사회로의 적응은 더디기만 한 상태다. 더욱이 오랫동안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살아왔던 탈북자들에게 몇 일간의 교육만으로 남한사회에 적응하기란 역부족으로 탈북자들에게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철저한 경쟁사회 속에서 일자리를 구했어도 취업한 탈북자들의 80%가 임금을 떼이고 있는 상황인 점과 새터민 부모가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할 수밖에 없어 아이들의 교육이 자연히 소홀해지게 되어 가족붕괴에 따른 청소년 이탈 또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북한 선교에 힘쓰는 공동체마을

새 터의 의미는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을 바라보며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산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권 목사는 전한다. 아직도 준비단계에 있긴 하지만 새터 공동체마을은 2010년 가을 여주에 북한을 섬겨갈 터를 우선적으로 마련하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삶을 담아낼 공동체를 시작했다.

경기도 포천과 남양주에서 오후3시에 출발한 사랑방교회 모닥불공동체식구들이 도착한 시간은 1시간 30분정도 걸린 늦은 오후5시쯤이었다. 한겨울 여주의 풍경은 맹추위와 구제역방제로 을씨년스러웠다. 여주시내에서 10여분쯤 떨어진 외곽 아직도 농촌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을안길로 들어서니 시온성교회라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초보자라 길 찾기가 서툴렀지만 무조건 이 표시를 따라 가다보면 분지형태의 골짜기 속, 새하얀 별천지가 펼쳐진다.

우선 건강해 보이는 권 목사 부부의 마중을 받고 아기자기한 집들과 예배당을 소개받았다. 시온성교회 예배당과 마주한 식당, 그 뒤편으로 숙소 등이 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두런두런 구제역에 대한 일화와 새로운 삶터에 대한 소개가 이어질 무렵, “금강산도 식후경,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권 목사께서 손수 시장을 보고 안주인께서 정성껏 마련한 음식상을 대하니 꿀맛이다.

공동체적인 삶을 실천하려는 모닥불방모임

저녁상을 대하니 몸과 마음이 뿌듯하다. 밥상을 나누고, 차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랑방교회 안의 작은 교회인 성서모임(코이노니아 : 공동체적인 삶)를 나누는 방모임시간이 되었다.

우선 시온성교회 유아실로 옮겨 각 가정별 찬양으로 기쁨을 나누고는 매번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그리고 말씀의 진리를 발견하고 삶에 적용하기 위한 시간으로 한 해 동안의 각자의 계획들을 한사람씩 나누었다.

늦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방모임 1,2부를 끝마칠 수 있었고, 이어 3부 순서는 텔레비전이 있는 주방 옆 쪽방으로 모여 아시안컵축구 예선전(한국vs호주)을 관전했다. 그리고 4부 순서로 넘어가 새터민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1년간의 파란만장한 소회를 권 목사를 통해 전해 들었다.

공동체 터를 찾아 부단히 노력했던 이야기며, 3,000천평 정도의 시온성교회를 계약하고 구입하게 된 배경과 진행과정, 첫해 화전 밭에 불을 내서 혼이 났던 일, 그 밭에서 정성껏 끼운 고구마를 수확 때 단 한 상자도 건지지 못했던 사연 등등...

이 모든 일들이 이리 모진 한파에도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이유는 우리들이 꿈꾸고 달려가야 할 삶의 현장이라 생각되어서일 것이다. 이야기는 다음날 새벽2쯤 인가 간신히 마치고는 저마다 편안한 안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바깥세상에서 이 혹한을 온 몸으로 견뎌야하는 가엾은 이웃들을 생각하자니 잠이 오질 않는다.

이웃을 섬기는 진실한 공동체마을이란?

여주에 터를 잡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남한의 각 지역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고, 무엇보다 통일 후 북한과의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권 목사가 공동체를 통해 북한 선교를 하고자하는 궁극적인 뜻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해 “예수와 하나님과 성령 안에서 서로 교통하는 형제, 자매로 사는 코이노니아적인 삶이 복음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복음의 본질을 북한에서 나온 새터민에게 미리 전해주는 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하고도 가시적인 북한 선교의 준비라고 보는 것이죠. 결국 공동체와 새터민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 생각난다.

이러한 삶과 북한선교에 뜻을 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하고 궁금했는데 40여명이란다. 그리고 공동체식구들은 수도권과 대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목회자, 선교사, 건축사, 의사, 교수, 교사, 미용사, 디자이너, 학생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20대~40대로 이뤄져있다고 했다.

이러한 구성원들은 15년 전부터 매달 2회씩 모임을 가지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지속해오다가 2005년 겨울, 가족 수련회 모임에서 앞으로 5년간을 준비 기간으로 삼고, 각자의 삶을 정리하여 5년 후 여주로 모이자는 제안이 나와 그 약속대로 공동체의 시작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지난해 권 목사 가정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새터민 마을을 준비하면서 권 목사는 “기독교 공동체는 자기, 이웃, 생명 모두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예배, 기도, 경배, 찬양으로, 이웃에 대한 관심은 봉사, 섬김, 선교로, 땅에 대한 관심은 유기농 재배, 친환경주택건축 등으로 삶에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다양한 공동체들로 은혜를 받고 수많은 유익을 서로 나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간, 아니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그 은혜를 주일에만 나눈다. 그것도 교회에 와야지만 나눈다. 과연 예수님이라면 특별한 사람과 특별한 시간을 내어 특별한 장소에서만 기독교신앙을 나누는 자리를 좋아하실까? 생각해 볼 일이다.

현재 기독교의 당연한 실천 사항이면서도 자칫 방심하다가 놓친 부분이 바로 \'사람, 동물, 강, 나무, 물고기, 풀벌레, 곤충, 미생물 등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공생의 잊혀 짐이다. 공생, 서로 도우며 함께 사는 것으로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단어다. 기독교공동체 대부분이 믿음생활은 열심인데 기독교라는 틀 속에 갇혀있다 보니 지극히 가까운 이웃은 물론 땅에서 나무에게, 나무에서 우리에게, 우리는 다시 땅과 나무에게로 순환하는 하나님의 생명성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에 새터민 마을은 이웃마을과 함께하는 선교로 가을걷이가 끝난 논바닥에서 여러 마을과 함께 하루 종일 잔치를 벌이는 ‘가을걷이 대잔치’를 열 계획이다. 잔치를 베풀되 부한 자보다는 가난한 자, 불편한 자를 청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그의 활동들은 모든 이들과 소통하는 공동체적인 삶의 중요한 실천이 될 것이다.

다음날 우리들은 불현듯 찾아온 아침햇살에 눈을 비비며 전날 정진영님이 기증했던 ‘숲속의 일우’와 마주쳤다. 숲속의 일우를 일구어낸 화가는 그의 작업노트에서 “숲 속에서 꽃이 피고 꽃이 진다. 잎이 자라고 잎이 진다. 새들이 알을 낳고, 알을 품고, 나는 법을 가르친다. 무서운 포식자들이 헛기침을 하면 작은 벌레들까지 숨을 죽인다.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휘청거리며 작은 나무가 자란다. 숲은 치열한 삶의 공간이며 실존의 현장이다...”라며 적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삶도 언제나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체시계에 맞춰 살아간다는 생태적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알고 있다. 더욱이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제적인 삶이란 ‘남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헌신과 함께 이웃을 위해 죽어질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나만 부르신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 모두를 사랑해서 함께 부르셨기 때문이다.

정오 무렵 여주 새터민 공동체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나와 아내는 가평의 또 다른 생태공동체마을 현장으로 향했다. 잣나무 숲속으로 들어서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족하면서 각자 삶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자연과 함께 창조주의 기쁨이 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울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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