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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선 작성일10-05-16 13:17 조회1,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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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선생님

교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대학은 넓은 강의실에서 안경을 낀 멋진 교수님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곳 일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일종의 로망이랄까? 하지만 입학하자마자 나의 이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올망졸망한 캠퍼스 안에 고등학교 교실과 다를 바 없는 소박한 강의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수업 내용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너무 실용적이고 도구적인 기능에만 치우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남학생이 타이즈를 신고 무용 수업을 받거나,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여학생들이 납땜하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1학년 새내기인 만큼 예쁘게 차려입은 와중에도 핸드백 밖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리코더 혹은 단소 (또 어떤 날에는 서예 붓....)은 감출 수가 없어서 전철 안에서도 내내 신경 쓰이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실망감을 안고 시작한 나의 새내기 시절에도 유일하게 대학생 기분이 나는 수업이 있었으니, 바로 ‘교육의 역사 철학적 기초’라는 수업이었다. 사용하는 교재도 ‘교육의 목적과 난점(難點)’ 이라는 두꺼운 양장본의 책이었다. 이 책을 들고 가는 날에는 나도 정상적인(?) 대학생이라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었다. 교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 이 수업의 첫 장면은 그래서인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첫 대면에서 교수님은 다짜고짜 우리에게 “교사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셨다. 이거야 말로 내가 기다려온 ‘멋진’ 질문이 아니던가?! “ (이때 쯤 나는 앞구르기를 하기 위해 고개를 어떻게 둬야 하는가?” 와 같은 질문에 익숙해 져가고 있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와중에 아쉽게 교수님의 지목은 피했지만 옆 학생의 대답이 내 생각을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 “학생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 자아실현을 하며, 이로 인해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입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식의 대답이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대답인가!’ 내 맘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아, 이 잘생긴 애 이름이 뭐였지? 하고 돌아보고 있던 찰나 교수님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하시며 이렇게 반문하셨다. “학생의 진로를 안내하고 행복한 삶을 조장하는 것이 꼭 교사여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보니 그랬다. 요즘은 진로에 대한 전문적인 컨설턴트도 많을 뿐더러 학생은 스스로 적성을 탐구할 수 있고 부모가 학생에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삶을 통해 가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교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교사의 진정한 목적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교수님의 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학생으로 하여금 다른 어떤 것보다 교사가 가장 가치 있는 직업임을 깨닫게 하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학생 자신도 교사를 꿈꾸게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교사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에게~ 이게 뭐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궤변이라고 생각했고, 그저 멋들어진 답을 위한 답이 아닌가라는 반발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긴 수업과 토론을 통해 차츰 이 답에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4년간의 학교생활과 5번의 실습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이 답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실제 학교 현장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그야말로 너무나 ‘이상적인’ 답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현장에서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학생보다 의사, 검사, 판사가 꿈인 학생들이 훨씬 많으며, 또 선생님이 꿈이라 해도 온전히, 순수한 목적으로 선생님을 바라는 학생들은 더더욱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하고, 어린 학생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도 자신이 다시 교사가 되어 돌아오고 싶을 만큼 즐거운 곳이 되지 못한다는 뜻일 지도 모르겠다.

아직 교사가 되기 위해 심신을 단련(?) 중인 내가 왜 새내기 시절의 이 수업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을까? 바로 멋쟁이 때문이다. 멋쟁이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내면서 이 대답이 완전히 이상적인 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정 목사님과 짧게 대화하는 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멋쟁이 학생들의 장래 희망 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다시 멋쟁이 학교 선생님이 되어 후배를 가르치는 것 이라는 것이다. 물론 멋쟁이 학생들이 교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나 가치를 깊이 이해했기보다는 순수하게 자신이 자란 학교에 돌아와 후배를 가르치고 시간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소박한 계획을 말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학교가 즐거운 곳인 줄을 알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어느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큰 가르침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르쳐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멋쟁이 학생들과 지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웃는지 모르겠다. 전임으로 맡으시는 선생님들의 고충을 모르는 나는 뭣도 모르고 애들만 보면 그냥 행복해진다. 선생님도 행복하고 학생도 행복한 학교,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학교가 바로 멋쟁이 학교가 아닐까 싶다.
물론, 숙제가 많지도 않고 몇 번을 확인했어도 “선생님 숙제가 뭐였죠?”라고 다시 묻는 멋쟁이들을 보거나, 아침-간식-점심-간식-저녁-간식을 먹고도 배고프다고 조를 때, 여느 중 고등학생처럼 거친 말을 쓰다가 선생님께 한 마디씩 듣는 멋쟁이들을 보면, ‘재내들이 뭘 알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껏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렇게 실컷 웃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선생님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가르쳐 주고 있는 멋쟁이들이야 말로 나에게는 귀중한 선생님인 것 이다.


멋쟁이들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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