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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으며 공동체로 볼 수 있는 영화추천 '위대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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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기석 작성일09-12-29 09:57 조회2,1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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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침묵]수도원 너머의 세상 속으로
다큐멘터리로 만나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침묵!

2009년의 성탄과 연말을 맞아 사회는 TV만큼이나 떠들썩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은 더 큰 자극을 요구하고 추구하기에 바쁘다. 반면 \'침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산다. 실상은 ‘침묵’만큼이나 영적 키워드가 없다. 가만히 내안의 심연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소리와 빛깔이 발산하는 하느님을 찾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성탄절이 지난 26일 광릉 숲 인근에 사는 두 가족 일곱 명의 식구들이 서울나들이로 종로구 소격동에 있는 아트선재센터로 나가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와 “언어가 사라진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라는 문구다.

전체적으로 일반영화가 추구하는 드러내기 보다는 절제의 아름다움을 통해 사물의 본질과 만나는 이 영화는 지극히 기록적인 요소와 예술적인 요소가 다분히 담겨있다.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생활수도원 수도자들의 오직 하느님을 찾는 고요와 감동이 마음을 뒤흔든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별들이 나타났다 지나가는 지루한 반복의 162분짜리 다큐멘터리영화인데 수도원 너머 미지의 세상, 그 묵상의 삶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 영화는 해발 1천3백 미터 알프스의 깊은 산중턱에 숨어 외부 출입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프랑스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이 1688년 설립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의 일상을 침묵으로 그린작품이다.

영화를 만든 필립 그로닝 감독은 침묵을 다룬 구름 같은 작품을 구상하다가 1984년 이 수도원에 촬영요청을 했다가 거부당했다가 19년이 지난 1999년 뜻밖의 허가를 받아 2년6개월간 수도원 안에 머물며 생활하고 기도하고 노동하는 영상을 담았다는데 실제로 촬영한 기간은 6개월이라고 한다.

기적 같기도 한 촬영조건은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소리 외에는 어떠한 음향효과나 음악을 인공적으로 삽입하지 않는 것과 수도원의 삶에 대하여 어떠한 해설이나 논평을 하지 말 것, 다른 인력의 도움 없이 혼자촬영 할 것 등이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사람의 언어라고는 들어볼 수 없는 가운데 고요히 자연의 소리만 들릴 뿐이다. 불이 타는 소리, 발걸음 소리, 문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비 소리, 종소리, 수레소리, 가위질 소리, 대화와 환호소리, 대야가 삐걱 이는 소리, 그레고리안 성가와 예배를 진행하는 소리 등이 또 다른 소리의 의미를 전해준다.

돈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속도와 경쟁만이 난무하는 지금우리사회에서 잊고 지냈던 일상과 사물의 가치로부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자연변화와 시간변화 속에서 혼탁한 도시적 삶을 말끔히 씻어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침묵의 영화가 아닌 침묵에 이르게 하는 영화인가보다.

수도원의 삶은 종교적인 색체가 너무도 진한 작품이지만 각자의 역할에 따라 옷을 만들고, 고양이의 밥을 주고, 머리도 각아 주고, 장작을 패고, 신발을 고치고, 설거지와 청소, 채소와 정원을 가꾸는 집중노동은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로 청빈한 생활과 수행, 노동, 기도로 자연과 동화되는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이러한 침묵 속에서 드려지는 자연과의 호흡은 영원한 존재인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여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 수도원의 핵심인 \'오직 하느님만\' 생각하는 것과 상통 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줄곧 나왔던 열왕기상 19장 11절~13절 말씀을 보면서 글을 맺는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낫다. 그러나 주님은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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