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교회-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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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를 지향하는 사랑방교회 - 복음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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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랑방 작성일04-09-18 17:45 조회3,2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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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상황 1995년 1월호
<공동체탐방>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랑방교회/b>

김현진
총신대원 졸, 전국 신학교 공동체모임 연합회 대표간사

‘공동체’ 하면 주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생활을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런 형태가 아니어도 현대 도시생활 속에서는 각자의 삶을 영위하면서 함게 사는 공동체적인 삶이 필요하고, 또한 일반 교회의 형태를 가지면서 공동체적인 교회를 이루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러한 참된 하나됨을 소중히 이뤄가는 공동체 교회가 있다.

사람을 만나는 방

사랑방교회는 종로4가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여느 작은 교회들처럼 약 70평 정도의 공간이다. 1층은 호프집, 2층은 디스크 도매상, 3층은 당구장, 5층은 댄스홀로 마치 유흥문화의 총 집결지 같은 빌딩 속에 자리잡고 있다. 어수선한 환경이지만 4층에 들어서면 창문에 세련된 서체로 쓰여진 ‘사랑방교회’란 로고가 인상적으로 들어온다.
교회당으로 들어가면 지난 10년 동안의 각종 행사 사진들, 턱이 낮은 강대상, 그 위의 작은 나무 십자가, 섬세하고 조밀한 강단꽃꽃이, 그리고 우측에는 전통적인 가구에서 볼 수 있는 격자 무늬의 미닫이문들이 이 교회의 분위기를 보여 준다.
사랑방교회는 이름 그대로 사랑방이다. 옛날의 사랑방이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새끼를 꼬면서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나누고, 길가던 행상들이 하루를 묵어 가는 만남의 장이었듯이, 사랑방교회는 사랑방을 “주인이 거하는 방, 사람을 만나는 방, 그리고 그 속에서 뜻을 모으는 방”으로 정의한다. 그래서인지 이 사랑방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교인들은 주일과 수요일 외에도 수시로 와서 얘기하고 밥 먹고 휴식을 취하면서 소박한 사귐을 나눈다. 그 외에도 조용히 기도하려는 사람, 어려운 문제를 상담받으려는 사람, 목회 자료실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랑방교회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좋습니다. 만나는 기쁨이 있지요.” 주희진 집사의 말이다.

어떻게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를 형성할까

사랑방교회는 사랑방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서 교회 설립의 의지를 다지다가, 한국 개신교 선교 1백주년이 되는 ’94년 4월 언더우드 목사가 복음을 들고 인천항에 들어온 날을 기념하여 평범한 가정집을 예배 처소로 해서 창립되었다.
사랑방교회는 “이 성전을 헐라”(요2:13-22)는 첫 설교로 ‘교회 갱신’의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천명했다. 즉 어떻게 오늘의 교회를 초대교회 공동체와 같은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사랑방교회의 출발점으로, 이는 없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 이미 세워진 교회를 본래 모습으로 성숙시키는 것이라는 인식하에 시작되었다. 정태일 목사는 “도심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봉사하고 상담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교회 갱신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

사랑방교회는 어린이부터 장년가지 전 교인이 주일에 단 한번의 공동예배를 드림으로써 예배의 단일화를 이루었다. 오후에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다. 매달 마지막 주에는 한국 최초로 경기도 청병 호반의 집이라는 곳에서 전원 예배를 시도했다.
매년 여름에는 ‘여름공동체생활’ 이란 이름으로 여름 수련회를 갖는다. 이것이 어린이, 청소년, 어른들 모두가 참석하여 나흘 동안 공동체생활을 집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방교회는 한국교회의 성숙과 교회갱신의 작은 디딤돌이 되고자 ‘교회 지도력훈련원’을 두어 공동체형성을 위한 인간관계훈련, 영성훈련, 지도력훈련 등을 실시했다.
’85년 10월 6일에는 세계성찬주일을 맞아 한국 교회 일치운동의 하나로 다락방교회, 두란노교회, 사랑방교회와 ‘교회 일치를 위한 연합예배’를 드렸다. 이 때는 또한 교회 창립 1주년을 맞아 대외적인 문서선교 차원에서 『사랑방』을 창간했고, 공동체훈련과 교육목회를 위한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86년에는 그 동안의 주일 오후 성경공부 모임을 ‘사랑방성서모임’으로 개편했다. 이때 귀납적 성경공부와 기도, 성도간의 교제,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일을 하는, 기존 교회의 구역모임에 상응하는 금요일 저녁의 지역별사랑방과 주일학교에 해당하는 연령별사랑방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86년 9월 4일 사랑방교회는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87년엔 서리집사 16명을 세우면서 첫 제직회를 조직하였고 ‘창립기념 신앙강좌’를 시작했다. 각 방별로 연 2회 정도 자율적으로 시골에서 자유스러운 생활과 어울림을 통해 공동생활을 익히는 2박 3일 정도의 소그룹 생활 프로그램인 방별 공동체생활도 시작했다.
’88년에는 대외 선교사역으로 전남 영광군 영광의 교회가 없는 마을에 ‘영광 사랑방교회’를 개척하여 농촌교회를 돕는 국내 선교의 첫발을 디뎠다. 또한 지역사회 봉사가 시작되었고 전 교인이 참여한 가운데 사랑방교회의 가치관과 공동목표, 공동 신앙고백을 포함하는 ‘사랑방교회의 약속’이 채택되었다.
’89년부터 사랑방교회는 도약하기 시작했다. ’91년에는 창립 때부터 사랑방교회를 눈여겨보던 익명의 독지가가 땅을 기증했다. ’92년에는 교회 신자들이 취학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공동체적인 전인교육을 시키는 ‘꾸러기학교’를 열었다. ’94년 4월 사랑방교회는 약 1백여명의 교인들이 출석하는 공동체교회로 창립 10주년을 맞이했다.

공동체 신학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정목사는 ’46년 서울 태생으로, 그의 유년기는 한국 현대사의 큰 아픔과 격랑의 물결이 험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8.15 해방의 혼란과 6.25전쟁의 과정에서 아버지와 큰 형을 잃고 홀어머니 및 남은 형제들과 어려운 생활을 해야했다. 또한 5.16과 5.17으로 집권한 군사정권 하의 혼란 속에서 인간 생명의 귀중함을 체험하였다. 그는 여기에 더해 ’72년부터 약 12년 동안 여러 형태의 교회를 경험했다.
“제일 오래된 교회, 잔잔한 교회, 떠들썩한 교회, 정적인 교회, 동적인 교회 등 7개의 교회에서 골고루 목회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성에 대한 어떤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정목사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사랑방교회를 구상하게 되었다.

인간 생명을 귀히 여기는 그의 사상은 ‘공동체신학’으로 나타난다. 즉 인간 생명에 대한 가치과 회복되고 인간 관계와 삶의 감격을 회복하는데 있어서 그 해결의 열쇠를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정목사는 이것을 사랑방교회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는 공동체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첨단과학과 기계문명의 발전, 권력의 남용, 물질 만능주의 는 인간을 비인간화시키고 인간의 생명을 소홀히 여기게 했다. 인간이 주어진 지위를 빼앗기고, 인간의 생명이 경시되고, 인간 관계가 단절되고, 삶의 감격을 빼앗기는 비인간화된 모습은 기독교 진리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창조하셨다. 모든 생각의 중심이 사람이며 일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그 중심은 사람인 것이다. 때문에 공동체 신학은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소중히 생각한다. 나아가 공동체 신학은 함께 더불어 사는 본래적인 모습의 삶을 추구한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서 결과적으로 서로 깊은 정을 주고받게 되는 모습이다. 결국 공동체 신학이란 재물이나 권력, 이념이나 체제, 그 무엇을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좋은 삶을 누릴수 있으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삶의 질에 관심과 목적을 두고 있다.

사랑방교회의 포근한 주일

주일이 되면 한국 교회는 예배의 홍수를 이룬다. 교인은 새벽 예배, 주일학교 예배, 대예배, 오후 예배 혹은 저녁 예배등 보통 하루에 서너 번의 예배에 참석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의 감격은 사라지고 무의미하거나 습관적이게 된다. 예배는 그 교회의 얼굴이다. 사랑방교회는 단 한번 예배를 드리되, 진지하고도 감격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자 애쓴다. 하나님의 초청, 죄의 고백, 말씀의 선포, 응답하는 생활로 진행되는 공동예배 속에서 전 교인의 한 가족됨을 확인케 해주고 아이들에게도 교육적이 효과를 가져다 준다. 찬양은 지역별, 연령별로 구성된 각 방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피아노, 전자오르간, 클라리넷, 첼로, 플롯 등 여러 악기가 참여한다.
예배 후엔 전 교인이 공동식사를 한다. 예배시간이 하나님과 집중된 교제의 시간이라면 공동식사 시간은 긴장을 풀면서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된다. 이 시간은 은근히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풍성한 대화들이 오가는 시간이다. 모든 교인이 한 식구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면서, 밥상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식사시간은 주일 외에도 수시로 이뤄진다. 예배당의 접는 의자는 공간 활용도를 높여 준다.
사랑방교회는 주일학교 대신 연령별 성경공부를 한다. 점심 후 오후에는 형식을 차리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 서로 담소하거나 탁구를 치면서 휴식한다. 각 방별로 근처에 있는 창경궁, 사직공원 등에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저녁에는 각 가정별로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리도록, 예배 지침을 제공해준다.
사랑방교회는 교회 근처에 사는 교인들이 거의 없어서 새벽기도회가 없다. 그러나 연중 사순절과 대강절 기간에 2주정도의 연속기도회와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진다. 수요일 저녁에서 수요성서 강해시간을 갖는다.

흩어지는 작은 교회, 지역별 사랑방모임

단 한번의 예배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금요일 저녁에 모이는 기성교회의 구역예배격인 지역별 사랑방모임을 보면 그러한 우려도 해소된다. 이 모임은 흩어지는 교회의 역할을 하며 사랑방교회 내의 작은 교회로서 기능한다. 가정을 가진 교인들이 지역별로 동서울사랑방, 서서울사랑방, 남서울사랑방으로 모이고 있다.
금요일 저녁 직장을 퇴근하고 8시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일주일간 있었던 생활 주변의 얘기를 나눈다. 30분 정도 찬양을 드리고 지역별 담당 교역자의 지도 아래 일주일 동안 기록한 성서일기를 가지고 함께 나눈다. 성경공부 후에는 각 가정이 빠짐없이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한다. 공식적인 모임을 마친 후에도 간식을 나누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자연스레 이어나가다 보면 대개 반 12시가 되어서야 마친다. 황옥현 집사는 “우리 방의 참석률은 매우 좋아 빠지는 가정이 거의 없습니다. 한번 대화가 터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떤 때는 밤 2시에 마칠 때도 있습니다. 우린 서로 너무 친밀하게 지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좋은 사람들이랍니다” 라고 말한다. 각 가정에서 돌아가면서 모이므로 서로를 보다 깊이 알게 된다고 한다.
이 모임과 더불어, 모든 교인들이 매일 같은 진도로 시행하는 귀납법적 성경공부는 일종의 경건의 시간처럼 성서일기를 쓰는 것이다. 개인과 방별 모임에서 빠지지 않고 이루어지는데 이 두 가지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버팀목이다. 또한 ‘방별공동체생활’은 각 방별로 연 2회씩 2박3일에 걸쳐 시골의 자유스러운 생활과 어울림을 통해서 공동생활을 익히는 소그룹 생활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교회 조직과 표상화된 교회 정신

교회 조직은 구역과 주일학교에 해당하는 작은 사랑방으로 나뉘어 있고 교회 행정을 위해 각 위원회가 조직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지역별 사랑방 외에 연령별 사랑방으로는 취학 이전의 아이들이 ‘꾸러기사랑방’, 국민학생들이 ‘어린이사랑방’, 중고등학교들이 ‘푸른꿈사랑방’ 청년 1부가 ‘늘푸른사랑방’, 청년 2부가 ‘젊은이사랑방’,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홀로 사는 노총각․노처녀들이 ‘주손길사랑방’에 속해 있다. 또한 교역자 그룹인 ‘섬김사랑방’, 과제 중심의 조직으로 문화선교를 준비하는 ‘문화선교방’, ‘공동체생활을 준비하는 사랑방’, ‘학교설립을 준비하는 사랑방’ 들이 있다. 각 방의 활동은 방장이 방원들과 합의해서 해 나간다. 각 방마다 주변 지역을 위한 봉사 과제가 있어서 내적 교제와 함께 밖을 향한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고아원 방문, 노동자교회 무료 진료, 시각장애자 돕기, 구족화가 생활 돕기, 공동교회 어린이 선교원 재정 지원, 도시 공부방 지원, 농어촌 교회 어린이 선교원 재정지원, 개척교회 교회학교 교사 지원 등이다.

우리들이 약속

‘사랑방교회의 약속들’ 중에는 ‘교회상’과 ‘생활규범’이 언급되어 있다. 우선, 교회상으로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동체 안에서 삶의 감격을 나누는 교회, 성서연구에 힘쓰고 교육적으로 이끌어 가는 교회, 가정을 보호하고 생활 속에서 주님을 증언하는 교회,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자연 속에서 경건을 훈련하는 교회, 도심의 휴식처로 지도력 훈련으로 봉사하는 교회, 말씀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는 교회를 언급하고 있다.
생활 규범은, 규모있는 시간생활, 신실한 약속생활, 모일때마다 찬양생활, 부드러운 언어생활, 숨은 봉사생활, 약한자를 기준으로 하는 덕을 세우는 생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임생활 등을 포함한다.
사랑방교회는 한국 교회의 성숙과 갱신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역들을 전개해 왔다.

교육자료실 운영
교육 목회의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사랑방교회는 한국교회의 갱신을 돕기 위해 교회내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교육자료실을 운영해왔다. 자료실에는 교회행정과 목회자료, 교육자료, 수련회자료, 사랑방교회 자료 등을 비치하여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꾸러기학교
’92년 취학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공동체적인 전인교육을 위한 학교로 개설했다. 이것은 단순한 유아원이나 탁아소가 아니라 교회의 신학적, 선교적, 교육적 방침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실험의 현장이다.
현재 약 15명의 어린이들이 지적 교육이 아닌 자율적인 관계형성을 통한 전인 교육을 받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의 아이들이 꾸러기학교 출석 후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호평하고 있다. 그 동안 다른 교회의 어린이들도 입학하려고 하는 등 반응이 좋다.
사랑방교회는 영국의 열린 교육의 장인 ‘섬머 힐’(Summer Hill)을 모델로, 공동체적 삶의 교육을 실천하는 전문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한국지도력훈련원
이것은 사랑방교회만이 아니라 이웃 교회들을 위한 교회 지도력훈련 프로그램이다. 그 내용은 공동체형성을 위한 인간관계 훈련과 영성훈련, 사랑방 부부모임 등으로 구성된다. 각 교회의 신학생, 목회자, 평신도들이 참석하여 ’84년부터 ’93년 4월까지 총 1천2백9십 명이 수료했으며 이것은 사랑방교회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성숙해가는 사랑방공동체

지난 4월, 사랑방교회는 10주년을 맞이했다. 10년을 돌아보면서 정목사는 그 동안의 성과에 대해 “이러한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의미”라고 말했다. 특히 “전 교인들이 서로 깊은 교제를 나누고 상호 신뢰감이 형성되어서 하나된 것이 무엇보다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10주년을 기점으로 해서 사랑방교회의 분위기는 최고조의 상태에 달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전원 지역에 교회를 짓고 교회 주위에 집을 지어 공동생활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건만 되면 대부분의 교인들이 함께 모여 살고 싶어합니다. 어떤 교인은 자신의 아파트를 팔기에 최적기인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교회가 이사갈 전원교회 부지가 결정되면 그곳으로 이사 가려고 팔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사랑방교회에는 이미 네 가정이 두 그룹으로 함께 모여 한 집에서 공동생활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서로가 10년 동안의 교회 공동체에서의 삶과 꾸준한 훈련을 통해 함께 살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라고 정목사는 부언했다.
초창기 멤버인 위성석 집사는 “우리 교회는 국교 출신부터 박사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목사님과 평교인의 목소리가 똑같이 나는 교회”라고 자랑한다.
사랑방교회 교인들에게는 어떤 상식과 편안함을 느낄수 있다. 그들은 사랑방교회에 대한 깊은 신뢰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사랑방교회가 이렇듯 성숙된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목회자의 지도력과 교인 모두가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 위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된 공동체성을 함께 길러왔기 때문이다. 박진용 전도사는 “우리 교회는 천사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을 천사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라고 말하낟. 사랑방교회 최고의 자원은 바로 하나된 ‘사람들’이며 그 힘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데서 나온 것이다.
정목사는 그동안 대외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섬김의 사역을 힘있게 펼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사랑방교회는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손 내미는 이웃들에게 물질적인 부족으로 인해 잘 도와줄 수 없었을 때 무척 안타까웠다고 한다. 사랑방교회가 그 동안 교회의 참된 모습을 회복함으로서 교회 앞에 영향을 주려고 했던 ‘존재 지향적’ 교회였다면, 앞으로는 비축된 내적 역량을 발휘하여 밖으로 사회와 민족을 섬기는 ‘사역 지향적’ 교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전원교회가 마련되면 공동생활의 집을 마련하여 교인이 함께 살게 되고 고아, 과부, 무의탁노인, 장애자 등 어려운 이웃들이 작은 단위의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고 청년들은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는 센터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내적 성숙에 치중했던 교회 모습에 대하여 반성도 있었다. 사랑방교회의 전채현 집사는 “공동체를 통해 드러난 가시적인 결과가 약한 편이었다” 라면서 “이젠 성장을 위한 보다 조직적이고 역동적인 사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초대교회에 부어졌던 성령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가 요구된다.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는 ‘성령님의 힘’과 그분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한 것이다. 존재의 성숙은 하나된 공동체로 가능하다면 사역과 부흥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성교회 형태의 공동체교회 모델

현재 한국교회의 56%가 1백1십 명 미만의 작은 교회들이다. 현재 1백여 명의 교인이 모이는 사랑방교회는 그러한 작은 교회들에게 교회 공동체성의 회복을 통한 교회 갱신과 성숙에 대해 큰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공동체적 교회 회복을 지향하는 교회로서 사랑방교회는 기존교회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직갱신과 교육목회를 통하여 공동체교회의 모델이 되고 있다. 특별히 장로교 치리의 원리에 따른 교회 조직과 운영을 통해 공동체성의 회복을 실현하고자 한 것은 많은 보수적인 교회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인 것이다. 그는 사랑방교회와 같은 공동체교회가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절반 이상의 교회에서 수용된다면 절반 이상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지금도 수많은 신학생과 목회자들이 사랑방교회를 계속 방문하고 있다.
사랑방교회의 10년 동안의 몸부림의 흔적인 ‘사랑방교회의 10년’은 그 자체가 실제적인 자료로서 한국교회 앞에 구체적인 섬김이 되고 있다. 정목사는 그간 기존교회의 형태를 가지고 공동체성을 구현하려는 교회의 모델이 없었다는 것과, 기성교회의 잘못된 스타일과 타협하려는 수 차례의 유혹과 갈등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정목사는 곡 함께 사는 공동생활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살면서 공동체성을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철저히 실천해나감으로써 일반교회 내에서도 성숙된 공동체를 이룰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모두가 함께 사는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공동체가 사랑방교회의 모델이라고 말한다. 기존교회 안에서도 진정한 공동체의 회복은 가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교회의 본질이기에 모든 교회에게 회복을 통한 교회 갱신을 하고자 했던 사랑방교회가 오늘 우리에게 귀중한 증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목사는 아직도 온전한 공동체 형성을 위해 준비중에 있다면서 공동체교회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오랫동안의 준비와 훈련’을 크게 강조했다.
“50년 후에는 사랑방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은 완전한 공동체로 한국 교회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을 확신한다”며 “사랑방교회는 꿈을 먹고사는 교회”라고 했다.
1백년 후를 바라보며 한국 교회의 갱신과 성숙을 위해 21세기를 준비하는 그의 작은 눈동자 속에서 필자는 “오직 믿음으로 사는 의인”(합2:4)의 큰 믿음을 볼 수 있었다.

“형제가 동거하여 연합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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