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교회-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
사랑방교회 소개 사랑방성서모임 성서일기 사랑방앨범 나눔의방 자료실
사랑방교회-외부에서 소개한 자료

당당한 그들이 희망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랑방 작성일04-09-18 17:47 조회2,695회 댓글0건

본문

당당한 그들이 희망이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도행전 2장을 읽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나누고, 물건을 통용(通用)하고,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 그것이 일상이 되어 하나님을 찬미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고, 한 번 찾아온 사람들은 그들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예수쟁이들은 그렇게 들불처럼 번져갔고, 나는 그 광경이 눈으로 보는 듯 선명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교회’의 기준을 따질 때면 언제나 거기로 달려가는 나를 본다.
사랑방교회(정태일 목사,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무림리 348)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들’이 떠오른다. 내가 본 사랑방교회의 사람들, 그들의 대화와, 글과 소문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충분히 증언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하나같이 당당하다. 그러면서 겸손하다. 참견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권위는 존중하되 그것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들지 않으며, 늘 하나이면서 또 제각각이다. 한없이 열려 있으나 또 한없이 닫혀있다.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2000년 전의 ‘그들’을 그려본다. 이런 방식의 연상이 불법이 아니라면 나는 즐겁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비로소 나의 좌표가 보이는 듯한, 아주 특별한 느낌이다.
열두 시간이 흐르고 그 사이 여섯 번의 심문이 있었다. 기득권에 눈이 어두웠던 사람들, 정치적인 생명에 연연했던 사람들, 그들이 진행한 불법적인 재판은 그러나 나약한 한 인간 예수님 앞에서 옹색하기 짝이 없다. 재판을 압도하는 진정한 힘은 피고로 손발이 묶였으나 산처럼 당당했던 주님께 있었다. 당당하게 침묵하셨고,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절개도 분명했다. 당당한 그리스도였다. 그분은.
정태일 목사는 성도들에게 “당당하게 사십시오”라고 말한다. 건강하지 않을 때 돈이 궁하여 하늘만 쳐다봐야 할 때, 사람들로부터 애매하게 판단당할 때, 불의를 저지를 유혹에 난감해 할 때, 어느 때든 당당하게, 주님처럼 그렇게 살라고 설교한다.
여섯 살짜리 꼬마가 길을 잃어도 울지 않고 파출소에 달려가 우리 집을 찾아 주세요, 라고 당돌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방교회 사람들의 그런 삶 때문이다. 아무도 아무에게나 아부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조차 없는 그들이다. 공동체로 더 가까워지려는 마음에 서울을 떠나 산골 같이 무림리로이사를 오는 그들에게서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움, 그 당당함이 보인다.
‘이건 학교가 아니야 우리 아이를 이런 교육현장에 보낼 수 없어.’ 그들이 그렇게 마음을 먹은 다음 했던 일은 그들의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학교를 만들려는 교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고 그들에겐 학교가 될 만한 배경들이 충분했다. 돈도 있었고, 사람도 있었다. 그걸 가지고도 못 하는 교회가 오히려 비정상이다. 사랑방교회는 배경 이전에 길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길이면 가는 사람들이다. 학교 가기 전의 유아들을 가르치는 꾸러기학교는 그것이 길이었기에 태어났다. 수많은 교회들이 유치원을 열고, 선교원을 꾸렸어도 한번도 해보지 못한 교육을 꾸러기학교는 해냈다. 가르침의 내용부터 방법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처음 가는 길을 당당히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배타적인 ‘교육계’ 조차 대안의 현장처럼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이제는 급기야 학생을 두세 명 가지고도 초등학교를 열고, 고등학교를 열었다. 그게 무슨 학교냐고 웃는 이들이 있다. 사랑방교회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가 학교라면 학교이다,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치며 어떤 사람들을 꿈꾸는가, 그게 우선이다.

사랑방교회에서 드린 예배는 둥그렇게 둘러앉은 그림 같은 풍경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아이들이 함께 앉아 설교를 요약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자연스러워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공동체는 그렇게 예배에서부터 고백되고 있었다.
삶 속에는 언제나 어른과 아이가 늘 함께 있었음을 아는 그들은 어른 따로 아이 따로 예배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며 단어를 수정해 주는 그들이다.
“그렇게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교회 규모의 크고 작음에 구애 받지 않는다. 기독교의 진리를 알고 이해하는 지(知)적인 면이 있고, 느끼고 깨닫는 정(情)적인 면이 있으며, 경험하고 실천하는 의(意)적 면도 있는데 신앙의 깊이란 지적이기보다 정적이어야 하며, 정적이기보다 의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나이가 어릴수록 지적이기보다 정적이며, 정적이기보다 의적이기에 그런 방법으로 신앙을 교육해야 마땅하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무엇으로도 손해가 아닌 까닭도 여기 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더 지식을 줘야 하겠는가. 오히려 품고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정태일 목사)
하나 됨의 비밀은 이렇듯 신비롭다. 신비로움을 깨뜨리는 순간 교회는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그런 비밀에 따라 주인과 손님이 사라질 때 진정한 공동체가 이뤄진다는 걸 그때 배웠다. 그러면 어느새 젖먹이 아이들의 울음소리조차 예배의 한 장면이 되며, 설교의 한 토막이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게 모두가 하나임을 고백하는 사람들, 여기에 ‘기독교’란 말을 비로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기독교 공동체’라고.
어느 성도의 글에서 무엇보다 이런 예배야말로 천국의 모습임을 일러준다. “딸 수지가 태어난 이후 바뀐 것 중 하나는 예배시간에 앉아 있는 장소가 달라진 점이다. 항상 의자에 앉다가 이제는 수지와 함께 아기들이 몰려 있는 예배당 뒤쪽에 앉는다.(사랑방교회 예배당은 마루에 개인 의자를 놓는다. 바닥에 보일러를 깔아놓았기 때문에 겨울에도 따뜻하다.) 물론 앞쪽 의자들 때문에 목사님 얼굴은 안 보이지만 설교는 그래도 잘 들어온다. 곁에 있는 아이들 덕분일까? 엄마 젓을 먹는 아이들부터 자리에 누워 있는 아이, 이곳저곳을 열심히 기어 다니는 아이, 떼를 쓰고 징징거리는 아이, 옆에 있는 의자를 잡고 일어서보는 아이, 모두 각양각색이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서 어린아이들을 보노라면 그냥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조그마한 아이들이지만 다들 개성이 있고, 성격이 있고, 그 사이에서 나름대로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는지 모른다. 자기보다 어린 아이에게 장난감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예쁘다고 안아주고 뽀뽀해 주기도 하고, 장난감을 빼앗느라 힘 겨루기를 하는 모습도 있지만 귀엽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하늘나라의 모습을 땅에서도 볼 수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아이들 덕분에 하늘나라를 구경하면서 설교를 듣는 셈이다. 게다가 가만히 이 작은 하늘나라를 지켜보는 것이 내겐 곧 기도가 되니 얼마나 은혜로운 주일예배인가.”
200명을 훌쩍 넘고도 모자라 대책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 정태일 목사는 성장하는 교회를 보며 하필 걱정에 빠진다. 하나 됨보다 서로 다름이 오히려 도드라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나 됨의 비밀을 간직한 그들은 성장을 위해 무엇을 지녀야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 설교에 복음이 있다 하고 또 복음이 없다 한다. 잘못 본 것일까? 나는 그런 복음을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삶이 된 복음을 본 적이 없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있으면 무엇이 복음인지 알 수 없다. 오히려 간디를 통해 나는 삶으로 실험된 진리를 보았다. 그의 자서전 『나의 진리 실험』은 문자로 굳어버린 복음보다 훨씬 진한 감동을 내게 주었다.
사랑방교회 사람들에게선 이런 섣부른 복음이 없다. 대신 그들에게선 삶을 훈련하는 치열한 몸부림이 있어 친근하다. 사랑방교회의 신학이 참된 코이노니아의 교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이 거기 닿아 있으므로......
오늘 이 시대를 살면서 바로 이곳에서 (그는 ‘now & here\'라는 표현을 자주 언급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일, 그것은 너무나 절박한 목마름이다. 이것은 다시 ’이 땅의 삶을 통해 영생을 누리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대치된다. 그처럼 하나님의 나라 곧 복음은 결코 관념일 수 없으며, 치열한 삶이어야 한다. 삶으로 복음이 이르는 사람들이 성도들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의 경험이 체험되는 현장이 곧 교회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또 흐릿한 개념이다. 사랑은 얼마나 다양한 옷을 입고 얼마나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표현되는지 알 수 없다. 사랑방교회 성도들의 사랑은 이렇듯 보다 구체적인 약속이 되어 삶으로 나타난다.
하나 됨을 지향하는 생활, 삶을 나누는 생활, 지체에 충실한 생활, 자신을 객관화하는 생활, 섬기는 종의 생활, 자연을 사랑하는 생활, 신실한 약속생활, 규모 있는 시간생활, 모일 때마다 찬양생활, 부드러운 언어생활, 약한 자를 기준으로 하여 덕을 세우는 생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의 책임생활......
그들의 학교는 이것을 충족하는 배움의 전이어야 한다. 협소한 교실의 수업으로 진학에 눈이 어두운 이들이 말하는 학교는 이미 이들에게 학교가 아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체험하고 나누는 곳이어야 학교이며, 그 범위 또한 삶의 전 영역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자연도 학교이며, 가정도 학교이며, 직장도 학교인 셈이다. 사랑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그러나 차근차근 조심스럽게 하나님 앞으로 가는 법을 가르쳐준 사랑방교회. 먼저 달려가기보다 늦더라도 함께 부축하며 걸어가는 법을 훈련시켜준 사랑방교회. 먼저 달려가거나 뒤로 많이 쳐져도 정죄하지 않도록 조심성을 깨우쳐준 사람방교회. 꿈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의탁하는 겸손을 알게 해준 사랑방교회.... 나는 이제 조용히 행하고 싶다. 우리에게 주신 장미꽃들로, 들꽃들로, 잡초로.”(사랑방교회 유미형 성도의 글에서)
사도행전 2장에서처럼 지금 내가 선 이 땅에서도 나는 ‘땅에 있는 하늘나라’를 본다.

박명철/본지 객원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